중학생 때의 일이다. 그날따라 부모님은 심하게 다퉜고, 서로를 향해 비난의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 중간에서 두 분을 말리느라 혼이 쏙 빠졌다.
“엄마 그만해, 아빠도 그만 좀 하세요.”
“제발 부탁이니까, 그만 좀 하라구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오가는 비난이 극에 달했을 무렵, 나의 분노도 정점에 이르렀다. 화난 나의 감정은 곧바로 말과 행동으로 나타났다.
“작작 좀 하세요! 집안 꼴이 이게 뭔데!”
그 말과 함께 나는 방문을 꽝 소리가 나게 닫고 현관 앞에 있던 플라스틱 박스를 발로 걷어차고는 집을 나왔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당시의 사건을 떠올려 보았다. 당시 나는 정말 화가 난 걸까? 나는 분명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화’는 안개와 같은 감정이다. 그 너머에 진짜 감정이 있다. 그렇다면 화로 표출된 나의 진짜 감정은 뭐였을까? 우울이고 불안이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 화 너머에 있는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진짜 감정을 알아야 화를 낸 그 순간에 채우고자 한 자신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그토록 격렬하게 싸우는 부모님을 보면서 당장에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부모님에게 나란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날 참을 수 없었던 화 너머에 있던 나의 진짜 감정은 불안감이었다. 그리고 채워지길 바란 나의 욕구는 내가 부모님에게 사랑스런 아들로 보여지는 것이었고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것이었다.
만약 그날로 다시 돌아간다면 “작작 좀 하세요! 집안 꼴이 이게 뭔데!” 대신에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엄마 아빠, 나도 엄마 아빠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싶어요. 저는 지금 이 상황이 슬프고 불안한데, 날 위해서 조금만 목소리를 낮춰 주시면 안 될까요?”
이렇게 말했다면 부모님은 내 마음의 소리를 충분히 들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격렬했던 싸움도 진정되었을 것 같다.
화가 났다면 그 상황과 거리 두기를 하자. 그리고 화 너머에 있는 나의 진짜 감정을 찾아보자. 그리고 채우고 싶은 욕구를 발견해 보자. 그러면 적어도 파국으로 치닫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박하승 리플러스 인간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