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ideposts    2018 / 06



Cover Story

최근 11년 만에 이뤄진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한반도를 둘러싼 국내외 정세가 매우 역동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런 때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원칙을 제시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이영훈 목사.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 치료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에게서 희망의 시그널이 느껴진다.



                                          June, 2018

                         

Cover Story


"희망 시그널"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라도 그에게 맡겨지면 잡음 없이 곧잘 해결된다. 세계 최대 규모의 여의도순복음교회 승계 문제도 가장 성공적으로 이뤄 냈다는 게 교계 안팎의 평가다. 교회 연합 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사랑과 나눔의 실천으로 경직된 우리 사회에 온기를 불어넣는 사역에도 열심이다. 그는 올해로 사역 60주년을 맞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이영훈 담임목사다. 남북정상회담 등 한반도에 부는 봄바람이 가슴 설레게 하는 요즘, 그가 전하는 희망 메시지가 궁금했다..


 Q. 4대째 신앙을 잇고 있다고 들었는데 목사님의 어린 시절 신앙이 궁금합니다.
   
미국 오티스 키너 목사님이 한국에서 부흥회를 두 차례 가지셨어요. 당시 전 각각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지금도 그때의 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해요. 훤칠한 키의 목사님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전하면서 펑펑 우셨거든요. 당시 통역을 담당한 조용기 목사님도 울먹이셨죠. 그때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고 이후로 그 결심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어요.
저는 영광스럽게도 4대째 믿음의 후손인데, 증조할아버지가 평양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서문밖교회와 장대현교회중 서문밖교회의 건축에 참여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증조할아버지는 평양에 들어온 초창기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듣고 믿음의 길을 걸으셨다고 해요.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였어요. 매일 예배를 드렸죠. 할아버지가 성경을 가르치고 기도는 돌아가면서 하고요. 그때 몸에 익은 예배는 제 삶의 기준이자 패턴이 되었어요.
순복음교회에 나오게 된 것은 1964년 초등학교 4학년 때예요. 지금까지 햇수로 55년을 순복음과 함께한 셈이죠. 집안의 친척들은 모두 장로교회를 다녔는데 저희 집만 할아버지의 뜻을 따라 순복음교회를 다녔어요. 3·1운동 때 옥고를 치른 뒤 거동이 불편해진 할아버지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순복음교회에 새벽예배를 다니시다가 젊은 목사의 설교가 은혜 충만하다며 주일에도 나가자 하셔서 저희 가족 모두 순복음교회에 정착하게 됐어요.





--- 이후 내용은 2018년 06월호 잡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