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ideposts    2019 / 02


                         

OVERCOMING ADDICTION


Win The Day


인생 작전 타임


Basketball was alway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his life.
Until drugs and alcohol took over

내 인생에서 농구는 언제나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약과 술에 빠지기 전까지는.


VIN BAKER Milwaukee, Wisconsin

빈 베이커 위스콘신주 밀워키



What’s the best job I ever had? The answer might seem obvious. From 1993 to 2006, I was a professional basketball player, a four-time NBA All-Star. I went to the playoffs multiple times with the Seattle SuperSonics and the New York Knicks and won a gold medal representing the United States in the 2000 Olympics. I earned millions doing what I loved.
A no less worthy answer might be the jobs I held after my NBA career was behind me. For three years, I was a youth minister at Abyssinian Baptist Church in Harlem, one of New York City’s most vibrant places of worship. Two years ago, I joined the staff of the Milwaukee Bucks, the NBA team that had drafted me right out of college. I’m now an assistant coach.
Illustrious career, right?
Well, maybe. But you could make a case that the best job I ever had wasn’t related to basketball at all. That was the year I spent as a barista making lattes and macchiatos at a Starbucks.
I held that job from 2015 to 2016. At the time, I was a recovering alcoholic looking for a new direction in life. That NBA career? I was cut from the last team I played for in 2006, after it became clear to coaches that I couldn’t get a handle on my drinking. My struggle with alcohol began during my earliest days as a pro player and lasted until I hit rock bottom in 2011. By that point, I was broke and living at my parents’ house in Old Saybrook, Connecticut, drinking a gallon of cognac a day and waiting for the alcohol to kill me.
How did I sink so low? How did serving gourmet coffee help me climb back? The answer to those questions is a God story, pure and simple.
I have no excuses for the addiction that wrecked my basketball career. I had a happy childhood in a stable home. My father worked as a mechanic and as a Baptist minister. My mom worked for a cosmetics company. My loving, faithful, no-nonsense parents didn’t even push me into basketball.
I was a standout at a small college—the University of Hartford—and was the Bucks’ first-round draft pick in 1993. I was 22 years old. Six feet, 11 inches. A center and power forward.
I was also plagued by anxiety. I’d grown up straitlaced and attached to my parents. I often went home for the weekend in college. The swagger of some athletes didn’t come naturally to me, especially under the glare of the NBA spotlight.


인생 최고의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이런 대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1993년부터 2006년까지 프로 농구 선수로 활동한 나는 NBA 올스타에 네 차례나 선정되었다. 시애틀 슈퍼소닉스와 뉴욕 닉스 소속 시절에는 플레이오프에 여러 번 진출한 바 있으며,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미국 대표팀으로 출전해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수백만 달러를 벌던 시절이다.
하지만 NBA 시절 이후에 가진 직업들도 못지않게 가치 있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3년 동안 나는 뉴욕시에서 가장 활기찬 예배당 중 하나인 할렘의 아비시니아 침례교회에서 청년부 목사를 지냈다. 2년 전에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선수로 선발되었던 NBA 팀인 ‘밀워키 벅스’의 코치진에 합류해 현재 어시스턴트 코치로 활동 중이다.
경력이 화려해 보이는가?
어쩌면 그럴지도. 하지만 내가 가졌던 직업 중에서 최고의 직업은 농구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스타벅스에서 카페라테와 마키아토를 만드는 바리스타로서 보낸 한 해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일한 기간은 2015년부터 2016년까지였다. 당시 알코올중독 치료 중이던 나는 삶의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었다. NBA 경력은 어떻게 되었냐고? 감독들은 내가 술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결정을 내렸고, 결국 2006년에 나는 마지막 소속팀에서 제적당했다. 프로 선수로 활동한 초창기에 처음 술에 빠진 후로 계속 내리막을 걷다가 2011년에는 결국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그 무렵 나는 무일푼이 되어 코네티컷주 올드 세이브룩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생활했는데, 매일 4리터가량의 코냑을 들이마시며 술 마시다 죽을 날만을 기다렸다.
어쩌다 그렇게 바닥까지 갔느냐고? 어떻게 커피 전문점에서의 근무 경험이 내가 재기하는 데 도움이 되었느냐고?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농구 선수로서의 인생을 망쳐 놓은 알코올중독에 대해서는 사실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다. 나는 안정적인 가정에서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정비공인 동시에 침례교 목사였고 어머니는 화장품 회사에서 근무했다. 두 분 다 다정하고 신실하며 합리적이었으며, 심지어 나에게 농구를 하라고 떠민 적도 없다.
작은 규모의 하트포드 대학교에서 나는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1993년 밀워키 벅스의 1차 선발전에서 선수로 선발되었다. 당시 스물두 살에 키는 186cm였고, 센터와 파워포워드 포지션을 맡았다.
한편으로 나는 늘 불안에 시달렸다. 고지식한 성격인 데다 부모님에 대한 애착도 남달랐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주말이면 주로 집에 내려가 지냈다. 일부 선수들의 거친 태도도 적응이 안 되었다. 특히 NBA의 화려한 조명 아래서는 더더욱.


번역 김보경


--- 이후 내용은 2019년 2월호 잡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